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가와 준 (문단 편집) === 알파 레코드 시기 === 1979년에 시작해 3년간의 작업을 거쳐 1982년 6월, 토가와 준과 우에노 코우지의 콤비에 따로 작사담당과 아트워크, 의상담당으로 미술학도 오오타 케이이치가 합류한 게르니카가 결성되어 앨범 데뷔를 한다. 첫 앨범인 '개조에의 역동'은 일본 락계의 거물인 [[핫피 엔도]], [[옐로 매직 오케스트라]]의 [[호소노 하루오미]]가 프로듀서를 맡은 앨범이며 구식 폰트와 외계어에 준하는 가사가 들어있어 따로 오오타 케이이치가 작성한 설명집 소책자가 동봉되어 있다. 이후에도 호소노 하루오미와 다카하시 유키히로가 주로 참여하고 프로듀싱한 알파 레코드의 ¥EN 레코드 소속 아래 솔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. ‘개조에의 역동’이 발표되자마자 구 다이쇼 시대의 다이쇼 모더니즘 컨셉의 복고풍으로 꽤 주목을 받았으나 생각보다 큰 반향은 없었는지 게르니카는 결국 활동을 중지하고 토가와 준은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는 등 소일한다. 그 후 멤버 각각의 솔로앨범이 따로따로 발매되기에 이르는데 그 중 토가와 준의 솔로가 바로 玉姫様이다. 게르니카 활동 중지 이후 1983년, 玉姫様의 작사가인 사에키 코우지가 있던 밴드인 하루멘즈의 구성원들을 데리고 밴드 YAPOOS[* 바로 [[가축인 야프]]에서 따 왔다(...).]를 결성하여 다시 앨범을 작업한다. 이후로는 싱글보다는 대부분 앨범 위주의 활동을 하게 된다. 1984년 토가와 준 본인이 이오 요시후미와 공동 프로듀스로 발표한 앨범 ‘[[玉姫様]]’는 오리콘 14위까지 올라가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곧이어 출시된 라이브 앨범인 裏玉姫는 '토가와 준과 YAPOOS'명의로 발매되어 야푸즈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. 이 시절 [[밤의 히트 스튜디오]]에 출연해서 행한 라이브는 한때 일본의 엽기 뮤지션(...)으로 알려져 돌아다니기도 했다. 이때 즈음부터 [[모리타 카즈요시]]의 [[모리타 카즈요시 아워! 웃어도 좋다고]]나 [[쿠로야나기 테츠코]]의 테츠코의 방 같은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고 전반적으로는 나이 스물셋에 걸맞지 않은 동안과 퍼포먼스, 독특한 가사와 정신세계로 아이돌 취급을 받았다(...). 그리고 이 시점부터 디폴트 컨셉은 '이상한 여자(?)' 수준으로 대중에 인식되는 계기가 된다. 1985년 3월 토가와 준 유닛 명의로 ‘極東慰安唱歌(극동위안창가)’라는 앨범을 발매한다. 역시 [[옐로 매직 오케스트라]]의 호소노 하루오미나 팀의 드러머인 다카하시 유키히로 등 중견급의 뮤지션들이 꽤 참여하였는데 호소노 하루오미의 곡 커버부터 중남미 민요, 동요, 오키나와 전통민요나 초등학교 교가, 오페라 파트의 일어버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인데 의외로 소품집 비슷한 느낌 치고 오리콘 15위까지 올라가는 성적을 낸다. 동년 10월에는 그전까지의 소속사였던 알파 레코드에서 토가와 준의 개인 레이블인 HYS레이블을 떼어주었고 이에 힘입어 토가와 준 솔로 명의로 세번째 정규앨범인 好き好き大好き를 발표한다. 타이틀인 ‘好き好き大好き’는 경쾌하고 정신이 꽤 나가있는 가사로 후일 [[얀데레]]의 시초라는 소리도 듣게 되는 곡으로 아직까지 희자되고 있지만 의외로 수록곡 중에 싱글로 발매된 건 프랑스 샹송 [[Comment te dire adieu]]의 리메이크인 さよならをおしえて이다. 굳이 야푸즈라고 칭해도 큰 차이가 없는 이유는 야푸즈의 메인 기타리스트인 다카에 타카오와 역시 베이시스트인 나카하라 노부오가 그대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(...). 1986년 さよならをおしえて를 싱글 커트해서 활동한 뒤 1987년 東京の野蛮이라는 베스트 앨범을 마지막으로 알파 레코드와 결별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